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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하는 세상

도시에 사는 거북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도시의 언덕엔
장수하는 거북들이 몸을 맞댄 채
꼼짝을 않는다
그들은 웅크려있고
받은 상처에
팔을 빼어 손벌리지도
발을 빼어 도망가지도
목을 빼어 소리내어 울지도 않는다
도시엔 더 이상 그들의 먹이가 없어 굶주리고
그들이 살 환경은 파괴되고 메말라간다
도시엔 그들로 살찌우려는 높은 빌딩 프리데이터만 있을 뿐
도시는 그들의 생식기를 거세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섹스에 집착하여 수를 불린다
2004년 9월 어느날, 화곡동 산 42번지 판자촌 강제 철거를 보며...
 
 
오랫만에 노트북에 저장된 일기를 보았다.
2004년 9월 날짜는 불분명.. 그저 그날 일기의 제목이 "도시에 사는 거북"이고 그 밑에 "화곡동 산 42번지 판자촌 강제철거를 보며"라고 씌여 있었다.
아마 2004년 그 때쯤은 명박이 서울시장을 할 당시 한창 서울 강북 소위 판자촌 곳곳에 뉴타운 바람이 불때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전에 뉴타운 관련 신문 기사를 보며 서울이 발전하고 깨끗해지고 좋아지는 구나라고 생각했었지만 판자촌 철거에 대한 그곳 주민들의 삶이나 보상문제에 대한 르포기사를 읽고 그날 밤에 저런 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지금은 화곡동 산 42번지에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 일기에 눈길이 간 것은 이 일기를 보며 얼마전에 있었던 용산 참사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용산참사사건을 보며 강제로 빈민을 쫓아내고 만든 겉으로 보기에 삐까번쩍한 도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재개발도 좋고 도시의 정비사업도 좋다.
하지만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보다 따뜻한 사람들의 삶이 먼저 일텐데..
위정자의 머리에는 그 모든 것보다 개발의 논리가 위에 있었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언론은 철거민들을 돈 한푼 더 받아 내려고 생떼를 썼던 집단으로 묘사를 했지 삶의 터전을 빼앗길 생존의 위협 앞에서 목숨도 잃을 정도로 그들의 상황이 절박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용산 참사 이후 진압작전 중 목숨을 잃은 경찰관과 철거민들 사이에 선과 악이 있는 듯 묘사하며 다시는 이런 폭력적인 투쟁을 용납하면 안된다는 등의 웃지못할 코메디 같은 비장한 문투의 사설을 보았다.
결국 목숨을 잃은 경찰관도 철거민들과 마찬가지로 개발논리가 희생시킨 사회의 약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시한번 생존을 위해 투쟁하다 화마에 휩쌓인 옥상의 망루에서 목숨을 잃은 철거민분들과 그 경찰관의 명복을 빈다.


도곡동 타워 팰리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구룡마을이란 판자촌이 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주소도 없었다. 얼마전에 비로소 구룡마을 주민에게도 번지수가 주어지고 주소가 생겼다고 들었다.

구룡마을과 같은 곳은 없앤다고 없어지는 곳이 아니다.

언젠가 이곳도 밀어버리고 고층 빌딩을 세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무작적 밀어버리고 재개발을 주장하기 보다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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