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이해하는 세상

닫힌 광장을 보며..



   

6월 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시작되고 YS에 의해서 군정이 종식되고 DJ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다음 나는 이제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줄 알았다.

   

더욱이 MB가 대통령이 될 때만해도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국민투표 선거로만 정권교체가 한국정치사에서 두번째로 일어났기 때문에 이제 민주주의로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줄 착각했었다.

   

Democratization(political development)은 정치학에서 big problem이지만 democratic consolidation은 democratization보다 덜 주목받는게 사실이다. 민주주의로의 경로에 들어서기는 힘들어도 한번 그 경로에 들어서면 그 경로에서 이탈하기는 쉽지 않다는 일종의 학문적인 자만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민주주의는 이루기도 힘들지만 이를 지키기도 어렵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끼게 된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고 분단과 이념 문제로 정치 자체가 역동적인 나라에서는 말이다.

   

며칠전 MBC PD수첩 '붕괴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을 보았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작년에 쇠고기 촛불집회에서 부터 느낀 바이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 없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해 알 수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 듯하고 몰랐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건 민주주의가 80년대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 것 같다. 그것도 한 순간에 말이다.

   

사실 민주주의는 참으로 어렵고도 허약한 개념이다.

   

민주주의의 정치원리는 근대 이후 발전된 역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그 원리에 대해 얘기를 한 로크 루소 등 정치사상가들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핵심원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가치를 존중하는 체제'이다. 어떠한 정부도 개인의 자유, 존엄성, 생명에 해를 가할 수 없고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권력 행사의 정당성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지켜져야 한다. 때문에 정부가 권력을 행사할 때는 꼭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헌법으로 정부의 권력에 제한을 가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한다. 그리고 대의제로 국민은 정부 권력 행사에 간접적으로 견제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정치원리는 이론적으로 얘기하기 쉽지만 원리가 실제 정치형태에 투영될 때는 한없이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려한 것은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정치적 식견이나 학식을 갖춘 사람은 소수인데 이 들이 아닌 무지한 대중에 의해 정치가 운영되면 민주주의가 오히려 혼란스러운 정치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폭도에 의한 정치는 폭군에 의해 종식되는 다수의 횡포에 의한 민주주의의 악순환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근대 이후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인터넷 발달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횡포는 민주주의의 해악으로 나타날 확률이 적을 것 같다.

   

또 하나는 대통령이 대의제 하에서 헌법의 기초로 통치를 해야 하지만 입법부나 사법부의 견제로 자신의 의지대로 통치가 어려울 경우 민주주의의 원리에 충실한다는 핑계로 헌법 및 대의제의 민주주의 정치형태를 무시하고 대중에의 호소(going public)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민주주의가 파퓰리즘으로 변질되기 쉽고 단기적으로 지지를 받는 정부가 되지만 정치적인 혼란과 민주주의의 역행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국민 전체의 경제적 평등을 강조하게 되면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 다를바가 없어지며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를 억압하려 한다면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다를바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정치원리는 추상적이므로 눈에 보이는 민주주의 정치행태만을 맹신하는 경우이다. 통치자가 형식적 절차만 강조하고 국민이 뽑아 주었으니 자신이 민주적인 지도자로 착각하고 민주주의 정치원리는 무시한 채 선거 이후 정권을 장악한 후에 그 절차적 정당성만을 바탕으로 권위주의 정치의 행태를 보이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정치행태는 분명 민주주의이나 정치원리는 민주주의에서 한 참 벗어난 경우가 된다.

   

앞에서 얘기 했듯이 민주주의는 경험적이 개념이고 역사적인 개념이다. 현재 공고화된 민주주의 국가들을 보면 위와 같은 민주주의의 왜곡 현상을 모두 겪고 이를 지혜롭게 극복해 온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책에서 아무리 민주주의를 연구해도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국가와 국민 사이의 균형을 어디서 맞추어야 할지 명확히 찾아내기 쉽지 않다. 책에서 얘기하는 이론은 단지 참고할 뿐 민주주의는 스스로 경험에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깨우침은 통치자가 깨우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깨우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수 많은 도덕적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에서 다수의 국민이 MB에게 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 지난 정권에 대한 실망감, 상대후보들의 빈약함, 메이져 언론들의 propaganda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MB정권에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물질적인 풍요도 못지 않게 탈물질적인 가치도 중요하고, 지난 정권에 대한 평가보다 새로운 정권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하고, 제 4의 권력이라는 언론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다. 현재의 이 어두움은 짧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길어야 하기 때문이다. 닫힌 서울 시청 광장을 보면 지금 답답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값진 민주주의의 경험적 지혜를 얻기를 바란다.




'내가 이해하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에 사는 거북  (0) 2010.08.16
노동의 탈상품화를 바라며..  (0) 2010.08.16
부끄러운 세상..  (0) 2010.08.15
일본의 비극, 텐노  (0) 2010.08.15
Barack Obama's inauguration  (0) 201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