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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하는 세상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논쟁을 보며 아쉬운 점..


세계자본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대표적인 정석의 길로 영국과 같이 산업혁명에 의해 성장한 젠트리계급이 자신의 물질적 힘을 기반으로 봉건적 계급을 혁명적으로 타도하고 자본주의 발전을 해나가는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의 길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이 걸어온 자본주의 길만이 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다. 러시아나 일본처럼 자본주의의 초기에는 외국상품 및 외국자본이 도입되는 종속적 특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 개혁에 의해 자립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해나가는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의 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과연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 이에 대한 논쟁은 매우 뜨겁다. 그 이유는 한국은 봉건제 국가 말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제 개항과 식민지상황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이라는 대규모 피해를 입는 동족간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한 특수성이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초기 단계 형성이 과연 어떠했느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비록 1960년대 군사정권의 경제개발계획으로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출발시켰고 또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 이전의 시발점이 어떠했느냐에 대한 논쟁과 그 성격에 대한 규정은 학문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한국 자본주의 씨앗의 성격을 규정할 때 그 씨앗이 조선의 봉건사회를 극복하며 우리가 스스로 심은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가 가져와 대신 심어준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논쟁은 논쟁 중 민족주의적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논쟁이 아닌 첨예한 대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자들은 역사는 일국사적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며 외래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는 성공과 실패가 되풀이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식민지 경험에 너무 강박되어 자유로운 의식과 사고에 강박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말은 민족적 굴레를 벗어서 객관적인 현상을 보면 식민지 근대화론이 정당하는 말이다.

이에 대한 반박이 정말 민족주의적 오류에 빠져 식민지 시기가 우리나라 민족의 정기를 흐리게 하고 민족해방을 저해한 것으로만 단순히 비판한다면 그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모든 비판을 담고 있지 못할 뿐더러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힘들게 한다. 민족주의가 주가 되는 논쟁은 서로 오류에 빠지기 쉽다. 역사적 사실을 보면 충분히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적 감상만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그래서 뭔가 아쉬운 감이 든다.

무엇보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은 
학문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식민지의 시혜를 입었다는 주장과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을 발전으로 긍정하는 것은 당시 자본가와 정치인의 친일 행각을 정당화 시켜주려는 정치적 목적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첫단추 부터 잘못 끼워져 버린 친일 청산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정치적 대결이 아닌 학문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