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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영화

시(Poetry) - 이창동




시 (詩, poetry)를 쓰는 건 무엇일까?

배 부른자만이 고상함이라는 탈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시를 쓰는 것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시는 고상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일상이고 현실 속의 고뇌와 슬픔도 시 안에서는 아름다움이 된다.

현실의 아름다움만 보고 시상(詩想)을 떠올리려는 영화속 주인공 미자 (윤정희) 할머니를 따라가며 시가 어떻게 쓰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난한 하층민적인 삶, 가족적인 불행, 범죄자의 할머니, 파출부의 일, 성적인 부도덕..

꽃을 좋아하여 꽃을 보고 시상을 떠올리려는 미자 할머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실에서도 자신의 순수함을 버리지는 못한다. 다만 순수함을 안은채 현실에 순응할 뿐..

순수함을 잃었다면 아마 마지막에 "아네스의 시"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생각와 삶을 사는 미자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미자 할머니는 현실에 부적응하는 사람이라기 보다 현실 이전의 사람이 어떨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몰입하고 보게 해준 감독의 역량과 어색한 듯한 연기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짐을 보여주는 주인공 윤정희의 연기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네스의 시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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